
남양주시가 민선 9기 공약 추진을 위한 다섯 차례의 전략회의를 마무리했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시민주권시대, 남양주 대전환'이라는 시정 비전 아래 혁신행정, 자족경제, 균형발전, 일상행복 등 4대 핵심 전략을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아쉬움이 크다. 익숙한 사업들이 다시 등장할 뿐, 다섯 차례 회의를 통해 무엇이 새롭게 결정됐고 어떤 문제가 해결됐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주권광장, AI 기반 남양주멤버십, 왕숙 첨단클러스터, 개발이익 환수모델, 지하철 3호선과 6호선, 8호선, 9호선 및 GTX 확충, 러너스테이션, 조선로열이음 역사문화벨트 등 나열된 사업은 다양하다. 일부는 남양주의 미래를 바꿀 만한 잠재력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미 공약이나 기존 정책 구상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적어도 이번 발표에서는 새로운 실행 일정이나 재원 확보 방안, 사업 추진 단계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회의를 다섯 번 열었다는 사실이 곧 정책의 진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행정의 성과는 회의 횟수가 아니라 그 회의를 거쳐 무엇이 달라졌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발표가 더욱 아쉬운 이유는 남양주시가 당초 내걸었던 전략회의의 목적에 있다.
시는 지난 10월 2일 전략회의를 시작하면서 공약별 연도별 실행목표와 세부 추진계획, 재원 조달 방안 등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쟁점과 보완 방안을 함께 논의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다섯 차례 회의를 마친 뒤에는 최소한 어떤 공약의 추진 방향이 조정됐고, 어떤 사업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확인됐으며, 이를 어떻게 보완하기로 했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남양주시는 공약사업을 네 가지 전략으로 분류하고 주요 추진 방향을 소개하는 데 그쳤다. 회의에서 구체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더라도 그 결과를 시민이 알 수 없다면 전략회의가 실제로 어떤 진전을 이뤘는지 평가하기 어렵다.
더구나 혁신, 자족, 균형, 행복이라는 네 가지 전략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시정계획에 적용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이름이 아니라 남양주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우선하고 어디에 행정력과 재원을 집중할 것인지다.
남양주의 현실을 보자.
73만여 시민이 살아가는 대도시지만 자족기능은 여전히 극도로 취약하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큰 교통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왕숙신도시 입주가 다가오는데, 정작 핵심 광역철도는 입주가 시작된 뒤에도 수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구도심과 신도시의 생활환경 격차, 부족한 지역 일자리, 갈수록 커지는 복지와 기반시설 수요도 결코 가벼운 과제가 아니다.
이런 도시에서 대전환을 말하려면 그에 걸맞은 정책적 선택이 있어야 한다.
왕숙 첨단클러스터에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산업과 기업을 유치해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다. 남양주형 개발이익 환수모델도 마찬가지다. 기존 개발이익 환원 방식과 무엇이 다르고, 남양주가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계산이 뒤따라야 한다.
철도망 확충은 더욱 그렇다. 9호선 연장사업인 강동하남남양주선은 2공구와 5공구가 각각 네 차례 유찰되면서 계약방식 변경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철도망 혁신이라는 표현을 다시 내놓는 것보다 어느 기관과 무엇을 협의하고 있으며, 착공 지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추진하는지 설명하는 편이 시민에게 훨씬 유익하다.
중앙정부나 경기도, 공기업의 권한에 속한 사업이라면 남양주시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대신 시가 책임질 부분과 외부기관의 결정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하고, 협의 경과와 다음 절차를 시민에게 알리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이다.
비전은 추상적일 수 있지만 실행계획까지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전략회의가 정말 치열하게 진행됐다면 그 성과는 12월에 공개될 실천계획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민선 9기가 출범한 지 이제 4개월 남짓이다. 이 시점에 모든 공약의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대형 철도와 도시개발사업은 여러 기관의 협의와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단기간에 결과를 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실행계획조차 모호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업을 완성할 시간은 필요하지만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설명할 책임은 출범 초기부터 존재한다.
특히 남양주처럼 대형 개발사업과 막대한 기반시설 투자가 필요한 도시는 우선순위 설정이 중요하다. 재원은 한정돼 있고 시민들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모든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약속은 듣기에는 좋지만, 현실적인 재원 배분과 실행 순서가 없다면 결국 모두를 기다리게 만드는 약속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발표하는 것보다 이미 추진 중인 사업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이 더 시급할 때도 있다. 화려한 신규 공약 하나보다 오랫동안 지연된 도로 하나를 개통하고, 막혀 있던 행정절차 하나를 해결하는 것이 시민에게는 더 큰 변화일 수 있다.
행정의 혁신은 반드시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하기로 한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완수하는 것 역시 중요한 혁신이다.
남양주시는 오는 12월 공약이행평가단 회의를 거쳐 민선 9기 공약과 실천계획을 최종 확정하고 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를 기대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비전과 전략을 다시 정리한 공약집이어서는 곤란하다.
각 사업이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 임기 중 달성할 목표는 무엇인지, 연도별 일정과 필요한 예산은 얼마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제시돼야 한다. 담당 부서와 협력기관의 역할도 분명해야 한다.
특히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을 민선 9기 공약에 포함했다면 이전까지의 진척과 이번 임기에 새롭게 달성할 목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진행된 사업을 새 공약의 성과로 포장하거나, 외부기관이 결정해야 할 사업을 마치 남양주시가 독자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것처럼 제시해서는 시민이 실제 기여와 책임을 판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공약별 진척도를 시민이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착수했는지, 설계 중인지, 예산을 확보했는지, 착공했는지, 당초 일정에서 얼마나 늦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계획이 바뀌었다면 그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시민주권을 강조하는 시정이라면 시민에게 행정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정보부터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시민이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시민주권은 자칫 또 하나의 행정 구호에 머물 수 있다.
다섯 차례의 전략회의가 헛된 시간이었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논의한 내용이 12월 실천계획에 구체적인 숫자와 일정, 실행 책임으로 담긴다면 이번 회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준비 과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12월에도 여전히 적극 추진, 협력 강화, 차질 없는 이행이라는 표현만 반복된다면 시민들이 느낄 실망은 작지 않을 것이다.
남양주 대전환은 선언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략을 세우는 것은 행정의 출발점일 뿐, 그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12월에는 남양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미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답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여섯 번째 전략회의 사진이 아니다. 다섯 번의 회의 끝에 앞으로 무엇을 달라지게 할 것인지 알 수 있는 실행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