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민의 주거 선택 기준이 과거의 역세권 중심에서 보행 생활권 내 편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슬리퍼를 신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서 일상의 필요를 해결하는 슬세권의 가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부동산 시장과 공공 정책의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특히 수원시, 부천시, 안양시가 경기도 내에서 가장 우수한 정주 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조사되었으며, 1인가구 비중의 증가는 동네 공간을 사적 영역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수원·부천·안양, 경기도 내 슬세권 명당 등극… 전월세 거래량도 압도적
경기연구원이 경기도 전역을 500m 격자 단위로 정밀 분석한 결과,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상업 및 복지 시설을 도보 10분 내에 누릴 수 있는 지역은 일부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경기도 내 시군별 슬세권 지수를 살펴보면 수원시가 83.1%로 가장 높았으며, 부천시(80.7%)와 안양시(75.8%)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 지역은 밀집된 주거 단지와 상권이 조화를 이루어 도민들이 체감하는 생활 편의성이 매우 높은 곳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보행 생활권의 편의성은 실제 부동산 시장의 활성도로도 입증되었다.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슬세권 지수가 높은 명당 지역의 전월세 거래 발생 비율은 88.5%에 달해, 편의시설이 부족한 취약 지역의 5.5%와 비교했을 때 무려 16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이는 현대의 주거 수요자들이 단순히 집 내부의 조건이나 교통망뿐만 아니라, 집 밖으로 나섰을 때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한 슬세권 인프라를 거주지 선택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주거지 선택 시 편의시설을 중시한다는 응답은 4년 전보다 4.7%p 상승한 18.2%를 기록하며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인가구의 공유 거실이 된 동네… 공공 서비스 패키지로 주거 질 높여야
슬세권 현상의 심화 뒤에는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라는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내 1인가구 비중이 30%를 돌파하고 청년 가구의 절반 이상이 독거 가구로 구성되면서, 협소한 주거 공간을 대신할 제3의 장소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이들에게 집 주변의 카페는 공부와 업무를 수행하는 서재가 되고, 편의점과 코인 세탁소는 일상의 기능을 지원하는 공유 거실의 역할을 수행한다. 보행 생활권 내 인프라가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경기연구원은 도내 주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긍정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인프라가 부족한 취약 지역을 생활권 집중 개선지구로 지정하여 보행 환경을 정비하고 가로등과 같은 안전 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방안이다.
특히 민간 상권 형성이 어려운 지역에는 공공이 주도하는 생활서비스 패키지 도입을 제안했다. 마을 주민센터에 공유 세탁기나 무인택배함, 생활물품 픽업 거점을 마련하고, 의료 사각지대에는 이동형 의료 서비스를 순환 배치하여 소외되는 동네가 없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김희재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 정책의 관점을 거대한 기반 시설 확충에서 도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공공이 민간 시설 유입을 위한 매력적인 기초 여건을 조성한다면, 경기도 전역에서 슬리퍼를 신고 일상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 주거 복지가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