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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길을 묻다 ②] 시간 도둑, 남양주 통근자의 하루는 왜 18시간뿐인가
  • 최성민 <심층 칼럼>
  • 등록 2026-02-27 19:23:17
  • 수정 2026-02-28 05: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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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남양주, 길을 묻다


 

[제2편] 시간 도둑, 남양주 통근자의  하루는 왜 18시간뿐인가



남양주 시민 셋 중 한 명은 매일 한강을 건너 서울로 출퇴근한다. 2025년 경기도 사회조사에 따르면, 남양주 통근·통학자의 32.6%가 서울로 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하는 시군 내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비율은 49.8%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면 같은 경기도의 이천시는 사정이 다르다. 시민의 86.7%가 이천 내에서 통근·통학하며, 서울로 나가는 비율은 고작 2.2%에 불과하다. 남양주의 1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같은 경기도 도시지만 한 곳은 자족형 도시이고, 다른 한 곳은 서울의 베드타운이라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통근 시간의 격차가 아니다. 삶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남양주 시민이 평균적으로 감내하는 통근 시간은 편도 44분, 왕복 한 시간 반에 달한다. 서울로 출근하는 경우 편도 65분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소요되는 시간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거주지 가까이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 고단한 시간이 평생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 생활 전체를 놓고 계산하면 수만 시간이 오직 도로 위에서 사라진다. 출근 준비와 피로 회복 시간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커진다.

 

집값을 아꼈지만 삶을 잃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 충격은 배가된다. 출퇴근에 소비되는 시간의 경제적 가치는 집값을 아끼려 했던 애초의 계산을 훌쩍 뒤집을 수 있다. 여기에 실제 지출되는 교통비까지 더하면 손실 폭은 더욱 커진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은 주거 비용을 아끼려 남양주를 택했지만, 정작 매일 수 시간씩 시간을 통근에 갈아넣고 있다. 게다가 이는 순수 금전적 손실만 따진 계산일 뿐, 시간 빈곤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는 돈으로 환산조차 불가능한 영역이다.

 

하루가 열여덟 시간밖에 없는 이유

 

출퇴근이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남양주 직장인의 하루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인다.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눈을 뜬다. 가족들이 잠든 사이 집을 나서면 서울까지 한 시간이 넘는 여정이 시작된다. 회사에서 종일 격무에 시달리고 퇴근길에 오르지만, 집에 도착하면 이미 캄캄한 밤이다. 저녁을 먹고 씻으면 곧장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일의 새벽 기상을 위해서다.

 

수면, 출퇴근, 근무, 식사를 제외하고 남는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에 불과하다. 자녀 돌봄과 집안일 시간을 빼면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계발이나 취미생활, 가족과의 대화는 언감생심이다.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되어 소파에 쓰러져 TV를 보다 잠드는 무력한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단순히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만 도둑맞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기 전 소요되는 출근 준비 시간과 왕복 2시간이 넘는 고된 통근, 그리고 퇴근 후 번아웃된 몸을 추스르는 3시간의 회복 시간까지. 이 모든 과정을 합산한 하루 6시간은 장거리 통근자의 삶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물리적인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지만, 이들이 주체적으로 누리는 진짜 삶은 열여덟 시간뿐인 셈이다.

 

무너지는 가족

 

장시간 통근이 가정에 미치는 타격은 더욱 뼈아프다. 통근 시간이 긴 지역에서는 구조적으로 부부가 평일에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기도 사회조사 등 여러 지표에서도 출퇴근 시간이 긴 지역일수록 가족 대화 시간이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국내외 다수의 연구 역시 통근 시간과 가정생활의 질 저하 간의 상관관계를 보고하고 있다. 통근 시간이 길수록 가족과 함께하는 물리적 시간이 줄어들고, 이는 가정 내 갈등을 유발하는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이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아빠의 얼굴을 주말에만 보는 주말 아빠가 되기 십상이다. "아빠는 왜 항상 안 계세요?"라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아동 발달 연구들은 부모의 부재가 아이의 정서 발달과 학업 성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일관되게 경고한다.

 

멈춰선 경력

 

경력 개발 측면에서도 장시간 통근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경기연구원 등 여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장거리 출퇴근 직장인 상당수가 자기계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명확하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퇴근 후 남는 건 지독한 피로뿐이다. 영어 공부, 자격증 취득, 온라인 강의 수강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체력이 고갈되고 의지가 꺾이는 탓이다.

 

일반적으로 직주 근접 지역 거주자들의 자기계발 활동 참여율이 높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근 시간이 짧을수록 저녁 시간을 활용할 여력이 생기는 덕분이다.

 

반면 남양주처럼 장시간 통근이 불가피한 환경에서는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과 체력을 확보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더 고단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상의 작은 제약들이 수년간 누적된다면, 이는 개인의 성취나 삶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숫자가 말하는 구조적 차이

 

2025년 경기도 사회조사가 밝힌 수치는 남양주와 이천의 본질적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양주 시민이 거주 시군 내에서 통근·통학하는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가? 셋 중 하나는 서울로, 일곱 명 중 하나는 경기도 내 다른 도시로 흩어진다. 남양주에 일터와 학교는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천은 정반대다. 시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이천 내에서 일하고 공부한다. 서울로 나가는 비율은 남양주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도시의 자족 능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지표다. 이천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양질의 일자리가 존재하지만 남양주에는 없다. 그 차이가 두 도시의 자족률 격차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도시 구조의 차이이자 일자리의 유무다. 본 시리즈 후속편에서 살펴볼 앵커 기업의 존재 여부인 것이다.


학문이 증명하는 통근의 재앙

 

장시간 통근의 폐해는 단순한 체감이 아니다. 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경고해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통근 역설(Commuting Paradox)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통근의 고통을 과소평가하고, 넓은 집이 주는 만족감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통근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불행을 초래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분야든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이 법칙은, 역으로 1만 시간을 빼앗기면 전문성 획득의 기회를 영영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학계 연구는 더욱 구체적이다. 중앙대 의대 및 강북삼성병원 공동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통근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과 우울감이 증가하며 장시간 앉아있는 습관은 비만율과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 남양주처럼 장거리 통근이 일상인 도시에서 이 경고는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자족률 86.7%가 만드는 

 

이론을 현실로 옮겨보자. 이천 시민의 86.7%가 이천 내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직주 근접이 실현된 이천 SK하이닉스 직원의 하루를 떠올려보라. 아침에 여유롭게 일어나 차로 십여 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저녁 정시 퇴근 후 곧바로 귀가한다.


반면 남양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다르다. 새벽 기상, 한 시간 반 이상의 출퇴근, 밤늦은 귀가. 가족과 대화할 시간도, 자기계발할 여력도 없다.


같은 직장인이고 똑같은 하루를 살지만, 삶의 질은 천양지차다. 글래드웰의 1만 시간 법칙이 작동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천의 직주 근접 직장인은 세월이 흐르며 그 1만 시간을 자기계발에 투자해 MBA 학위를 따고, 취미를 즐기며, 가족과 깊은 유대감을 쌓는다. 반면 남양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이력서에는 추가될 내용이 없다. 건강은 나빠졌고, 가족 관계는 소원해졌다.


카너먼의 통근 역설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남양주 시민들은 주거비를 아꼈다고 믿었다. 하지만 통근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절약한 금액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족률을 높여야 시간을 되찾는다

 

역설적이지만, 남양주의 경제 문제는 시간 문제를 해결해야만 풀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족률을 높여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만약 남양주 내에 양질의 일자리가 대거 창출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현재 셋 중 하나에 달하는 서울 통근자 비율, 절반에도 못 미치는 거주 시군 내 통근 비율이 획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다. 매일 길에서 버리던 몇 시간을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이 회복된 시간의 경제적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적 여유는 지역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퇴근 후 동네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게 된다. 상권이 살아나고 자영업이 활기를 띠며, 지방세 수입도 증가한다.

 

자기계발 시간이 생겨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 가정 불화가 줄어들며 출산율 제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건강이 증진되어 사회적 의료 비용도 감소한다. 무엇보다 지역 활동 참여가 늘어나 공동체가 회복될 전망이다.

 

이 모든 선순환의 시작점은 단 하나, 바로 일자리다. 남양주가 일터가 되어야 한다.

 

2028년, 시간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

 

왕숙신도시 조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엄청난 인구가 새로 유입될 예정이다. 만약 이들마저 모두 서울로 출퇴근해야 한다면, 또다시 수많은 시민이 매일 도로 위에서 인생을 낭비하는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다.

 

하지만 왕숙 첨단산업단지에 유망 기업들이 들어와 일자리가 대거 생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의 통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간 절약을 넘어 삶의 회복, 건강의 회복, 가족의 회복, 그리고 미래의 회복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는 남양주 경제의 회복이다.

 

시간은 삶이다

 

'Time is money(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이 맥락에서 더 정확한 표현은 'Time is life(시간은 삶이다)'일 것이다.

 

결국 타 지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통근자는 매일 출퇴근과 그 부수적인 과정으로 하루의 4분의 1을 잃고 있다. 이를 평생으로 환산하면 순수 통근 시간만으로도 족히 2년, 출근 준비와 피로 회복까지 더하면 3년 가까운 시간을 도로 위와 그 언저리에서 허비하는 셈이다.

 

저렴한 집값이라는 경제적 선택을 위해 시작된 이 고단한 여정은, 정작 가족과 건강, 자기계발의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 그 자체를 앗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회복 불가능한 자원이다.

 

남양주가 진정으로 변화하려면 모든 시민이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열여덟 시간의 한계에 갇힌 미완의 도시에서, 스물네 시간 내내 시민의 삶이 온전하게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시간 도둑이 사라진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곧 자족 가능한 일자리가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출퇴근 지옥이 없는 도시를 뜻한다. 왕숙신도시가 완성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시간 도둑은 앞으로도 더 많은 시민의 삶을 갉아먹을 것이다.

 

빼앗기고 있는 시간을 찾아오는 것. 그것이 남양주 자립의 유일한 열쇠다.




✍️ [남양주, 길을 묻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남양주의 길은 어디로 향해야 합니까?
 
필자 소개 : 온라인 시민커뮤니티 왕숙진접사랑 회장(닉네임:달빛벗)



[기획연재: 남양주, 길을 묻다] 앞으로 이런 내용을 다룹니다


제1편: 73만 명의 역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대도시

제2편: 시간 도둑, 남양주 통근자의  하루는 왜 18시간뿐인가

제3편: 텅 빈 낮, 신도시 상권 공실의 진실 

제4편: 재정자립도 꼴찌, 왜 남양주는 가난한가

제5편: 앵커 기업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법

제6편: 왕숙신도시, 구원인가 재앙인가

제7편: 자족도시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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