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초거대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남양주시 진접읍 일대에 추진 중인 2.2기가와트(GW) 규모의 'KDV(Korea Digital Valley)' 프로젝트는, 단일 사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글로벌 자본의 이목을 끈다. 실제로 세계적인 투자사 블랙스톤은 이 프로젝트의 미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사업 초기부터 전액 인수를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 자족도시로의 도약을 꿈꿔온 남양주에 이 거대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은 분명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대규모 시설만 들어설 뿐, 도시가 베드타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거대한 잠재력 뒤에 놓인 과제: 전력망과 주민 수용성
KDV 프로젝트는 10조 원이 넘는 사업비와 여의도에 버금가는 부지 규모만 보아도 국가 기간사업에 준하는 거대 계획이다. 클라우드와 AI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데이터센터 수요를 끊임없이 부채질하고 있고, 글로벌 거대 자본은 시장 선점을 위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남양주가 이러한 글로벌 투자 유치의 중심에 섰다는 것은 고무적인 신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이다. '전기 먹는 하마'라는 별명처럼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기를 소모한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될수록 전력 수요는 폭증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전력망 병목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당장 2027년 수도권의 전력 공급 부족률이 36%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2.2GW의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대규모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소음 문제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곤 한다. 평내·호평 지역에서 관련 사업이 지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데이터센터가 내뿜는 막대한 열이 도시의 온도를 높이는 '열섬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주민들의 반감을 사는 요인이다. 이러한 인프라 불균형과 사회적 갈등은 대규모 투자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사업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할 수 있다.
자족도시의 열쇠, 시설을 넘어 '디지털 생태계'로
남양주 KDV 프로젝트는 단순히 시설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설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인구 100만 시대를 앞둔 남양주시는 자족도시로의 전환을 위한 골든타임을 선언하며 왕숙신도시 내 도시첨단산업단지에 카카오, 우리금융 같은 핵심 기업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KDV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자족 기능 강화의 핵심 동력이 되어야 마땅하다.
진정한 자족도시는 단순히 건물과 인구를 늘리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만약 KDV 프로젝트가 서버만 가득한 거대한 저장 시설에 그친다면, 왕숙신도시는 결국 '베드타운의 확장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뛰어난 기술 인력이 남양주로 유입되고, AI와 클라우드 기반의 혁신 기업들이 둥지를 틀어야 한다. 나아가 관련 연구개발(R&D) 및 서비스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의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R&D 지원, 스타트업 육성 같은 소프트웨어적 인프라 투자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KDV 프로젝트는 남양주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가 될까, 아니면 거대한 신기루에 그치고 말까? 그 답은 경제적 논리를 넘어선 균형 잡힌 시각과 지혜로운 접근에 달려 있다. 이 원대한 계획이 현실이 되려면, 안정적인 전력 확보와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왕숙신도시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자족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연결'과 '확장'의 지혜가 절실하다. KDV 프로젝트가 미래 산업을 이끄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힘차게 도약하기를 기대한다.